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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16 22:00
그리스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총리
 글쓴이 : 빈센트
조회 : 4,670  
아버지 총리의 포퓰리즘 때문에아들 총리가 고통받는 그리스
3대째 총리 파판드레우80~90년대 총리 안드레아스 복지정책 쏟아내 최고 인기경제 파탄 물려받은 아들은 국가부도 막으려 긴축 정책

  
"빚을 없애지 못한다면 빚이 그리스를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최근 국가부도 위기에 몰리면서 전 세계 금융시장을 들썩이게 하고 있는 그리스의 총리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59)가 한 말이다.
파판드레우 총리는 3명의 총리를 배출한 그리스 정치명문가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총리를 지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파판드레우 총리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그리스의 국가부채 문제는 지난 1980 ~1990년대 총리를 지낸
아버지 안드레아스가 무분별하게 도입한 각종 복지정책의 결과란 지적이다.
뉴욕타임스(NYT)12"요즘 그리스에서 전개되는 일들을 보면
고대 그리스 비극(悲劇) 시인인 소포클레스가 파판드레우가()
이야기를 쓴 것처럼 생각된다"고 전했다.
 
대중 사로잡은 아버지 안드레아스
현 총리의 아버지인 안드레아스는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이다.
지난 1963년 그의 아버지(현 총리와 같은 이름인 게오르기오스)
그리스 총리가 되자 총리 경제고문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하지만 4년 뒤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 해외 망명길에 올랐다.
안드레아스는 미국·스웨덴 등지에서 교수생활을 하며 정치활동을 하다가
1974년 군사정권이 몰락하자 귀국해 반독재 인사들을 주축으로
새로운 급진좌파 성향의 정당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PASOK)을 결성했다.
PASOK1981년 선거에서 압승해 안드레아스는 총리가 됐다.
그는 총리가 되자마자 정부지출을 늘려 의료보험 혜택을
전 계층으로 확대하고 평균·최저임금을 대폭 끌어올렸다.
직원을 함부로 해고하지 못하도록 노동법도 개정했다.
사회개혁도 병행해 교회의 허가 없이도 그리스 내에서 결혼할 수 있도록 했고
학생들이 교수 선발에 개입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그가 집권하기 전 10년 동안(1971~1981) 유럽연합 평균(3.0%)보다
높은 연 4.7%를 기록했던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1980년대 들어
유럽연합 평균보다 낮은 평균 연 1.5%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아버지와 다른길 가는 아들
지난 200910월 총리가 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는
선심성 정책으로 인기를 얻었던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총리 취임 직후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착수한 것을 비롯해
정부 지출을 줄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는 아버지 안드레아스가 뿌려놓은 무분별한 복지정책의 씨앗을
수습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란 평가다.
지난 1980~1990년대 안드레아스 정부에서 일했던
테오도르 스타티스는 "(국민에게) 더 많은 월급과 서비스를 제공하려 했지만
 결국 돈은 국민이 아닌 관료들 손에 들어갔다"
 "우리는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 계속해서 돈을 빌려야만 했고
이는 끔찍한 실수였다"고 말했다고 NYT는 전했다.
충분한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이뤄진
선대(先代)의 선심성 정책은 결국 파판드레우 가문의 3대째 총리를
좀처럼 해결책을 찾기 힘든 깊은 수렁에 빠뜨리고 말았다.
 
긴축정책 펼치자 아들 인기 급락
파판드레우 총리가 기존의 좌파적인 정책노선을 버리고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서자 그에 대한 지지율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역대 가장 인기 있는 총리였던 아버지와는 대조적으로
지난 5월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7%가 그를 믿지 못한다고 답했다.
게오르기오스의 친동생이자 경제학자인 닉 파판드레우는
 "(형이) 그리스 역사에서 가장 나쁜 시기에 총리가 되긴 했지만
지금은 그의 시대다"라고 말했다.
파판드레우 현 총리 역시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정치무대에 올랐다.
 미국에서 태어난 그는 귀국 후 아버지가 창당한 PASOK에서 활동하다
아버지가 총리에 오른 1981년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이후 교육종교부·외교부 장관 등을 역임하고 지난 2004PASOK의 대표 자리에 올랐다.
조선일보 2011. 7. 14일 기사